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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나의 끝, 예수의 시작

나의 끝, 예수의 시작 

교보문고 전자책 스마트폰 태블릿
저자
카일 아이들먼
출판사
두란노
출간일
2016.01.09
평점 및 기타 정보
평점
(참여 0명) 리뷰쓰기-나의 끝, 예수의 시작
페이지 248 Page 이용가능환경 PC, 스마트폰, 태블릿
서비스형태 EPUB 파일크기 1 M
대출 0 / 1 예약 0
  • 출판사 서평

    한국 교회 10만 독자의 선택,
    《팬인가, 제자인가》 카일 아이들먼의 신작

    출구를 잃어버린 절망의 시대,
    나의 끝이 예수 역사의 출발점이 되다!

    도처에 왜냐고 묻고 싶은 일들이 수두룩하다. 고뇌하는 개인을 넘어서, 교회는 교회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만큼 망가졌다는 절망감이 뒤덮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왜 하필 우리 가정에? 왜 하필 우리 교회에? 왜 하필 우리나라에?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제 다 끝났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무거운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이 시대 크리스천들을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팬인가, 제자인가》를 통해 예수님의 팬인 것으로 만족하며 살던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깨우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카일 아이들먼의 신작,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이 책은 우리가 떨어질 수 있는 삶의 가장 깊은 밑바닥, 이른바 ‘나의 끝’에 대해 다룬다. 마주하기도, 인정하기도 힘들지만, 누구나 자신의 끝에 이르는 순간에 맞닥뜨린다. 카일 아이들먼은 더 이상 갈 곳 없는 우리 인생의 벼랑 끝이 예수님의 실재를 만나는 현장이 된다면서, 내가 죽고 끝난 그 자리에서 비로소 예수님이 생명의 일을 시작하신다고 말한다. 이는 듣기 좋으라고 하는 피상적인 위로나 막연한 긍정의 목소리가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자들이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다.
    내가 죽고 끝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역설적인 하나님 나라의 법에 눈감는 한 인생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이 책은 세상의 방향과 거꾸로 가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 우리의 이성도, 직관도, 문화도 뒤엎는 예수님의 방식을 다시금 기억하도록, 이 땅에 젖어 사는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우리는 이제 그럴 듯한 권면 대신 우리 영을 진정으로 살리는 말을 들어야 한다. 카일 아이들먼은 그러니 이제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도록 매일같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끝으로 가자고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고통스럽더라도,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이 책의 메시지들을 따라가 보자. 그곳에서 예수님이 시작하시는 충만하고도 복되며 온전한 삶을 살자!

    책속으로 추가

    [152쪽 중에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5-6). 정말 이상한 질문이다. 남자는 심각한 병에 걸려 하루 종일 치유의 연못 주위에서 죽치고 있다. 그가 낫기를 원할까?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살 빼기를 원할까?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탈출하기를 원할까?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안에 뭔가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게 아닐까? 목회를 할수록 예수님의 이 질문이 이해가 간다. 답은 자명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치유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연못 주위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교회에는 오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원치 않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사람들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행동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신다. ‘너는 오랫동안 이도저도 아닌 회색지대에 갇혀 있었구나. 정말로 나아지길 원하느냐? 아니면 정녕 절망과 낮은 기대의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말았느냐?’

    [197-198쪽 중에서]
    예수님은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에서 태어나실 수도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딱 어울리는 시간과 장소야. 역시 메시아로 예언된 분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라고 말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억만장자 가문에서 태어나실 수도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돈의 힘에 감탄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실 수도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권력의 힘을 칭송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하고 약하고 이름 없는 집안에 태어나셨고, 우리는 이에 대해 “역시 하나님의 능력은 대단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휑한 백지 위에 능력의 붓을 휘저으셨다. ‘자, 봐라!’